몇가지 주변에서 보거나 들은얘기중 참 마음이아픈 얘기일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멀지않은 훗날에 아무런 준비못하면 우리들의
이야기일수도 있지않을까 생각되어 적어본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하는 시조의 한대목에서
서글픔이 묻어나오기도 하지만 요즘에야 그 무거운것은 아니라도
일없이사는 노년도 결코 행복이라고만 할수도 없잖은가 말이다.
서울 신월동에 동생이 살고있어 어느초여름날 저녁에 동생내외와
막걸리를 사들고 동네의 조그마한 공원에올라가 한가한 정자에
마주앉아 막걸리를 시원하게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저편에 앉아있던 몇분의 노인중 할머니 한분이 우리의
가까운곳으로 와 앉더니 우리들의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참 어찌할까 망설이다 한잔 하시겠냐고 물었더니 일단은 형식적이지만
사양하는척 하더니 술잔을 받는다.
술몇잔을 나누어 드리다보니 모자라기도 하지만 술도 떨어져
우리는 자리를 걷고 일어났고 그 할머니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않더라.
그 얼마후,
다시 동생네 가서는 그 공원에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다보니
예의 그때 그 할머니가 다가와 약간 떨어진곳에 앉는데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아우에게 한잔 나누어 드려야하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아우의말이
충격적이었다.
"아니, 놔둬요 형님."
"저분들 일부러 이런것 얻어먹으려 나오는 분들이고 오히려
버릇되어 나빠지니 모른척 하세요."
그말대로 마음이야 꺼림칙 하지만 모른척 우리끼리만 마시다보니
이 할머니는 우리들 들으라 하는듯이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요즘 젊은것들은 어른도 몰라보고 예의도 없고......" 등등등
그러거나 말거나 못들은척 다 마시고 그자리를 벗어날때까지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할머니의 궁시렁거림을 별도의 안주로
삼을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아버님께서 안타까워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
"저 밑에 골목입구에 영감셋이서 이 애비올때만 눈빠지게 기다리더라."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그 영감님 세분이 매일 골목입구에 의자를 갖다놓고앉아 해바라기를
하면서 얘기만 나누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어느날 아버님께서
소주 두병과 부드러운 안주를 사다 드렸단다.
그 영감님들 연세가 한분은 83, 그리고 두분은 70대말 이라더라.
그때당시 우리 아버님 연세는 60대초반.
할일없이 나와있지만 주머니가 텅텅 비어 술한잔 살돈이없으니
그저 얼굴만 보면서 얘기를 나눈다해도 그게 하루이틀이지.
지루하던차에 아버님이 내어주시는 술한잔이야 그분들껜 감로수,
그 이상이었겠지.
그다음날도 외출후 돌아오시면서 또 사드렸고 그분들은 구세주를
만난듯이 반기고....
알고보니 83세의 영감님 아들내외가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더랜다.
서울에서 식당씩이나 하는사람이 그 부친을 그렇게 방치한다고?
이상하다 생각되어 그 식당에 들려서 그 연유를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 아들이란 사람이하는 말을듣고 이해가 가시더란다.
"어르신께서 그리 물으시니 답해드리긴 합니다만....."
"정말로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러면서 온 얼굴에 비분을 띄우면서 말하는데 듣기도 겁나더라고.
아버지 젊은시절에 어린자신들과 어머니를 남겨놓고 바람이나서는
젊은여인을 꾀차고 딴살림을 하면서 자신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단다.
어쩌다 아버지가 보고싶은 어린마음에 찾아가면 문전박대에
몽둥이가 날아다녔고 그 어린자식들을 홀로기르느라 어머니가하는
그많은 고생을 눈물을 삼켜가며 보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단다.
물론 공부도 많이 할수가 없었고 어느날 아버지란 사람은 자식이
찾아오는것이 귀찮았는지 어디론가 말도없이 사라져 버렸댄다.
그 여인이랑.
그후 어렵게 장성한 이사람.
그 생활을 이해해주는 아내를만나 가난을 떨쳐버리자 고생고생
하다가 그나마 빚내어 이 식당을 차렸고 인건비라도 아껴보려
부부가 홀써빙과 배달까지 겸해가면서 식당을 운영하던중 어머니는
한많은 생을 마치셨고 그 한이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고있던
3년전 어느날.
80먹은(이렇게 말해도 되겟지?) 노인네 하나가 찾아와
내가 네 애비니라 하면서 방구석하나를 차지하고 앉더랜다.
마음속에 쌓인한도 한이지만 그래도 내아버지란 사람을 내치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빚갚아가며 장사를 하는데 아버지 용돈같은건
꿈도 못꾸겠노라고 한숨을 푸욱쉬어내는 그 아들앞에서 공연히
미안해지고 죄스러워 물어본것을 오히려 사과 하시고는 그 식당을
나오셨댄다.
사실 예전에 우리네의 삶속에 이런경우가 어디 한두번 일까마는.....
그 얘기를들은 우리 아버님.
그후로는 두번다시 술을사다 드리는 행위를 접었는데 다른 골목으로
돌아오시면서 먼저골목을 기웃하고 살펴보니 그 세 노인은 우리
아버님을 기다리며 고개를 사방으로 기웃거리더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내가 너희들에게 용돈받아 생활하면서 참 오지랍도 넓구나. 허허허"
박봉에 월급생활 하면서도 그나마 우리 아버님은 그런구차한 생활을
안해도 될만큼 해드린게 그나마 다행인가?
하긴 홀로 삼남매를 키워내시며 결코 한눈을 팔지않으시고 꼿꼿한
선비의 기상으로 인생을 살아내신 우리 아버님이야 그런 대접을
당연히 받으시는게 맞지만 말이다.
정말,
나중에라도 정말.
나를 포함한 우리들중에는 저렇게 구차한 늙은시절을 보내게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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