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때,
밥 짓는어머니
꽁보리 삶으면서 딱 한줌 입쌀 얹어 밥지으면 그 한줌 입쌀은 딱 한그릇의 흰 쌀밥이 되었고
그 밥을 아버지 밥그릇에 퍼담고는 조금 남은 흰 색의 쌀들과 삶아진 꽁보리는 휘휘 저어 나머지
가족들 밥그릇에 퍼 담으니 그것은 곧 꽁보리밥.
뻣뻣하고 입안에서 데굴 데굴 굴러다니는 꽁보리밥을 먹다 어쩌다 한번 그 흰쌀밥을
한숟갈 얻어 먹으면 얼마나 부드럽고 맛이 있던지.
참 이상한게 그때 그 아버지는 자식들의 밥그릇에 꽁보리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 입쌀밥을 혼자서 맛있게 드실수 있었던건가?
아버지는 저녁 느지막히 들어오시면 막걸리 한됫박 받아다가 (우리가 심부름을 하면서
조금 흘리(?)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드시면서 담배도 한대 맛있게 피우신다.
저녁밥 먹고 한참 지났으니 출출한 뱃속에서는 무언가 더 달라는데 아주 어렵게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택도 없을걸 잘 알면서도 한마디 던져본다.
"아부지. 나 과자 하나만."
아부지는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치신다.
"얌마. 밥 먹었으면 되지 무슨 과자야 과자가."
그 호통에 오금이저려 한구석으로 몸을 밀면서도 생각에는 참 이상하다.
아부지는 밥 먹고도 막걸리 마시고 담배도 피우면서 왜 우리는 밥만 먹었으면 된거라고
호통을 치시는거지?
어릴때에 그 서운함이 아마도 "한" 비슷하게 마음속에 남았었나보다
물론 그당시 경제 사정으로는 아버지 막걸리도 겨우 잡숫는데 아이들 과자값까지는
엄두가 안나다보니 호통으로 얼버무리는 아버지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을까?
모르겠다.
장가들어 애들 기르면서 머리속에 들어있는 그 의문과 서운함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꽁보리밥을 비롯한 잡곡밥을 먹이지도 않았지만 우리 아내에겐
그나마도 향수 비슷하게 머리에 남아선가?
가끔 밥에 잡곡을 넣어 먹자는 아내의말에 질겁을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었다.
"애고, 잡곡밥 먹으려면 당신이나 먹어."
"난 어렸을때먹은 그 꽁보리밥이 아직도 소화가 덜됐어."
그 외에도 그때와 다른 생활이라면 저녁에 퇴근하며 막걸리 한병 사들때엔 꼭 애들 과자
한봉지 챙기는걸 잊은적이 없었다.
그런데 부작용(?)도 생겼다.
혹시라도 막걸리를 사지않는 날에는 애들 과자도 물론 뻥.
그러면 애들이 물었었다.
"오늘은 술 안드세요?"
고기?
이건 자다가도 고기 소리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 잠결에 먹는 고기맛이 왜 그리도 좋던지.
물론 어쩌다 동네의 초상집이나 다녀오신 아버지 덕분(?)에 맛볼수있는 행운의 날이었지만.
그런데 격세지감이란게 이런건가?
오늘 동네 할인 마트에 갔었다.
둘러 보다보니 한켠에 푸짐히 쌓여있는 딸기 상자들.
제법 굵은 딸기를 보다보니 조금도 망설임없이 손이 나간다.
"음, 우리 큰손녀 교은이가 좋아하는 딸기"
제 어미가 이녀석을 가지고는 그렇게도 딸기를 먹어대더니 그 자식놈까지 아주 딸기
귀신이 돼버렸나?
틈만나면 딸기를 찾는데 이 한겨울에도 그 비싼 딸기를 서슴없이 집어드는 나.
그래,
이 할배가 막걸리 한사발 마실때 너희들은 딸기를 작살낼만큼 사랑이 큰것인가?
아니면 경제 사정이 그만큼 나아진 것인가.
맨날 돈이없네 경제가 불경기네 하면서도 외손녀 녀석에게 이 한겨울 비싼 딸기를
서슴없이 사줄수 있다니.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하구나.
어느날 아내가 아들놈이 밖에서 생활 하다보니 비어있는 그방을 드려다 보면서 하는 말.
"아휴. 먹을게 한방 가득이네."
그랬다.
그 방은 어느새 우리 손주들의 간식거리 식품 창고 비슷하게 돼버렸다.
나도 보니 허허허 참내.
바나나, 딸기(이 겨울에),사과 배를 비롯한 과일들,
각종 과자와 사탕에 젤리에다 초코렛까지 등등등....
우리 부부가 사 나르지,
제 부모가 오면서 사오지,
거기에 바로 이웃에 사시는 처형 내외가 사들여오지.
아이가 없으신 처형 내외분은 우리 아이들을 자신들의 친자식마냥 그리도 이뻐 하시더니
그 손주들까지 아주 이뻐서 어쩔줄 모르듯 매일 드나들며 애들과 놀아주면서 애들 옷이니
신발은 도맡아 사주시다보니 큰놈 신발이 자그마치 9켤레나된다.
그것도 작아진건 제 동생에게 대물림하고 또 버리고 남은게 말이다.
명절이나 돼서야 한켤에 얻어신고 다 떨어져야 사주던 그런 신발이 쌩쌩한채로 9켤레나.
"음, 오늘은 뭘 신고갈까?"
유치원갈때 큰 손녀의 짧은 고민 시간 이기도하다.
"얘들아, 엄마 아빠랑 어여 가자."
곧 되돌아오는 질문들.
"엄마 차? 아빠차, 어떤거?"
부부가 한 직장에 근무 하면서도 따로 출퇴근 할때가 종종 있다보니 차를 각자 갖고있고
그러다보니 나올수있는 그런 질문.
우리 어린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지금의 생활들.
그래.
참 기쁘고 또 기쁘도다.
너희들에게 이 할배 할미같은 그런 어린시절을 만들어주지 않게됨이 말이다.
그저 무럭 무럭 잘 자라서 너희들 다음 세대에게는 더 나은 생활을 물려주려마.
다시는 그런 가난이 대물림 되지않게 말이다.
오늘도 며칠만에 제 부모따라 기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팔랑 팔랑 현관문을 나서는
우리 손주 세녀석의 뒷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 내 아버지에대한 서운함이나 그분의 흠을 공개 하는것같아 이런 글을 쓰기가 망설여 졌지만
친구들과 담소도중 조심스레 어린시절 얘기를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 했음을 알게되더라.
어느 분 에대한 서운함을 말하려 하기보다 생활의 변화를 말하려 함이니 그대로 읽는분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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