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인생 뒤끝엔 어떤걸 바라시나?

인천백작 2011. 6. 11. 22:44

죽음,

사실 30중반 이전에는 죽음이란 단어 자체가 그렇게도 싫을수가 없었다.

 

죽어?

내가?

왜?

이렇게 팔팔한데?

 

그런데 우리나이 37세때 10년이나 젊은 27세의 남자가 장가도 일찍 들어가지고는 그당시 4세된

아들과 임신 7개월된 아내앞에 재산이라곤 400만원짜리 독방전세 하나 딸랑 남겨놓은 상태로 뇌종양

이란 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된일이 있었다.

 

그때서야 죽음이란 그저 환상이나 상상속의 일이 아니고 언제든 바로 내앞에 닥칠수있는 일상적일수도

있는것이란 생각이 깊이 들다보니 사람이 평소에 안하던 짓을하면 금방 죽는다는 말을 무시 하면서까지

일 하나를 저질렀다.

 

바로 자신이 죽거나 다쳐야 탈수 있다기에 뭐 그런놈이 다있냐고 투덜대던 생명보험에 가입한거다.

 

집에와서 그런말을 하니까 아내는 가뜩이나 박봉에 뭘먹고 살려고 보험씩이나 들었냐고 쫑알대는것을

내가 죽고나서 재혼을 하더라도 빈손으로 털털거리며 얻어먹으러 갈게 아니라 손에 뭐라도 좀 쥐고

당당하게 재혼하려면 잔소리말고 보험금이나 따박 따박 잘 부으라 엄포를 놓기도했다.

( 2007년 9월 11일 사랑방 글번호 10733번)

 

그리고는 나이 40이 넘으면서 부터는 죽음이란걸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마음에 동요없이 화제에

올려 대화하기도 하는중이다.

 

자,

그런데.

실제 세상을 떠나고 난다음에 남은 가족도 가족이지만 과연 나 자신은 어떻게 처리(?) 되기를 바라는가?

매장이냐?

화장이냐 하는것이다.

 

우리딸이 어느날저녁에 나와같이 술한잔 나누면서 하는말.

"아빠와 엄마중에 어느분이 먼저 가실것 같애요?"

 

그외 이런저런 얘기후 하는말.

"두분 사후에 어떻게 모시는게 좋겠어요?"

"매장이요? 화장이요."

(2007년 12월 4일 사랑방 글번호 11182번)

 

물론 화장하여 무슨 경치좋고 어쩌고 한곳을 굳이 찾지말고 그저 깨끗하고 양지 바른곳에 잘 뿌려달라

말한적이 있었는데 그 화장.

 

사실 양 부모님을 모두 화장으로 모시고나니 명절전에 남들은 벌초하네 묘를 손보네 하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자신이 직접하는 사람은 말할것없고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그 고생을 실감하는데 그런일이

없으니 몸하나는 편하고 좋기는 하더라.

 

여기서 좋으면 좋은거지 좋기는 하더라는 말이 뭣인가하면,

 

3살때 인천에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이라는곳으로 이사를 가서는 4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곳

묘지에 어머니를 모셔놓고 11살때 우리가족은 인천으로 되돌아 왔는데 한창 사춘기 시절에 우울한일이

있거나 뭔가 심심하다  싶으면 그때당시 차편으로 아침일찍 인천에서 출발해야 저녁늦게 들어 올수있는

그 먼거리를 혼자서  차비와 약간의 식사비만 챙겨가지고 가서는 묘에 풀도뽑고 여기저기 손보고 난다음

잠시 앉아 있다보면  그렇게도 마음이 편안할수가 없었다.

그 이후 결혼한 다음에 아버님의 의견에따라 산소를 개장하여 화장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그후 아버님의 유언대로 아버님도 화장으로 모시면서 어디다 유골을 모시는게 좋겠나 생각하다보니

(사실 이건 비밀인데. ㅎ) 13층인 우리집 베란다에서 내다보면 약 1km 거리에 운동하러 다니는

동네 야산이 보인다.

 

생각에,

이곳에서 보이는 저 언덕이 마침 햇빛도 잘드는 양지볕이요 바로 눈앞에 보이니 매일 아침마다

문안인사 드리기도 좋겠구나 생각하고는 그 숲에 아버님 유골을 뿌려모셨다.

 

그런데 이게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천하에 불효 자식이라 그런건지 처음 두어달은

아침에 일어나면 멀리 내다보며 아침 문안인사도 착실히 드리고 운동하러 그산에 오를때면

가끔이라도 그곳에 들려서 아버님 뵙듯이 인사도하곤 하였는데....

그 이후로 8년이 지난 지금은 어쩌다 생각도 잘 안나니 이것참 이런 불효가..... 쩝.

 

그런데 얘기를 들으면 어느 연화장에서는 유골을 분쇄하는곳에 흰종이로 싸서는 벽돌 쌓듯이

한쪽벽에 주욱 쌓아올린게 있다더라.

 

그게 무어냐 물었더니 담당자 하는말이 분쇄를 맡겨놓고 유족이 찾아가지 않는 유골이란다.

죽어서도 가족에게 버림 받는것 아닌가 말이다.

 

또는

한쪽 구덩이에는 어디다 특별히 모시기 곤란한 유골을 그냥 버리듯이 뿌리는곳도 있다더라.

그러니 어느 유골이 누구인지 구별도 못하고 섞이어 버려지는것이다.

시신이 바뀌었다고 싸우는 집도 있는데 그렇게 섞어서 버리는 그런집은 또 어떤 집안인지.

그래도 후손이 지켜야할 땅덩어리 한귀퉁이라도 차지하고 들어 앉는것보다는 나은건가?

 

자, 그러니.

나중에 다시 화장으로 모시긴 했지만 사춘기시절에 마음이 머물던 포근한곳이 어머니 산소였고

지금은 때가되면 처가의 장인어른 산소에 가족이 모이면 그렇게 포근할수가 없으니 화장을

많이 하지만 굳이 매장을 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이렇게 후손이 모이는 장소도 되기 때문인가?.

 

그리하여,

매장과 화장의 장단점이 공존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사후에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아이들에겐 가차없이 화장하라 말은 했지만 사실은 나도 어떤게 더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난,

 

화장하라는 뜻에는 변함이 없지만.

 

(수목장 이란것도 화장후에 일이니 이거나 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