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새삼스레 보이는.......

인천백작 2011. 4. 5. 16:14

동네산에 몇년간 다니다보니 어느정도 산에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그랬으니

이제부터 제법 큰산에 도전해보자 시작한게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그동안 다닌다는 산이 그저 큰산만 골라 다니느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만 주로 다니다보니 웬만한 작은산은 성에 차지도 않는다는 건방진 생각으로

작은산엔 다니지 않았었다.

 

그래도 작은산은 작은산대로 멋이 있을텐데.... 하는생각에 작은산의 오묘조묘한

아름다움도 느껴보자고 아내를 꼬시고 달랬지만 요지부동.

그 작은 체구에 그저 큰산만 고집하는 사람을 달래고  꼬드겨서는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을 가봤었다.

 

그런데...

다녀오면서 내내 투덜거리는 잡음(?)을  감내할수밖에 없었으니 그것도 괴로움이라.

 

말인즉슨.

죽어라고 3시간 반,

왕복 7시간을 운전해 가서는 기껏 2시간 산 타자고 거길 가자 했냐고 집에오는

내내 잔소리를 꿍시렁 거리니 들어주는 그것도 참 곤욕이라.

그렇다고 그 불만을 잠재울 뾰족한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고.... 쩝.

 

암튼 이러구러 다니다보니 어느날 아내가 산악회에 가입하여 다녀온 천관산이

그렇게 좋더라며 가자고하여 그 멀디 먼 전라도 땅끝까지 6시간 반을 운전해

갔는데 산타는 시간은 기껏 한시간 반. ㅋㅋㅋ

그러니까 왕복 13시간 운전하고 산은 1시간 반을 타고.

 

그런데 그 산과  주변 경관이 어찌나 멋있던지 운전의 노동력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으니 그다음부터 아내의 작은산 예찬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생각에는 다녀와보진 못했지만 서울 근교의 산이란게 기껏

서너시간짜리 코스밖에 안될테고 그러니 설악산이나 지리산같은데 비교하면

동네 산책길 정도밖에 못될것이란 생각으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 둘이서 휴일을 앞두고 뭔가 먼곳의 여행은 왠지 내키질않고 그렇다고

허송으로 휴일을 그냥보내긴 심심 할것같아 둘이서 오랫만에 의기 투합해서는

전철타고 관악산에 한번 가보자 의견일치를 보았고 휴일날 아침에 전철을타고

관악산 등산을 처음으로 하였다.

 

사당역에서 관음사를 통과하여 정상인 연주대를 거쳐서 과천으로 내려오는

3시간 반의 짧은 산행을 해봤는데.

 

이런,

건방진.

 

이렇게 멋지고 이렇게 험하여 산타는 재미가 짜릿한 이런산을 여태껏 모르고는

지레 짐작만 가지고 이런 멋진산을 홀대하고 있었단 말인가?

허허허 참 기가막힌 일이로고.

 

그후로 삼성산을 거쳐서 관악산을 관통하는 코스도 5시간동안 타보고는

3월 28일날엔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지만 내친김에 북한산을 가보자 하고는

나름 준비를 하였다.

 

일단 불광역에서 출발하여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종단코스를 타기로 결정하고는

우비도 챙기고 혹시 녹지않은 눈과 얼음에 대비해 아이젠도 집어넣고 호기롭게

불광역쪽에서 오르기 시작했는데  아이고..........

 

이건 첫 코스부터 깍아놓은듯한  급경사 바위길을 기다시피 오르는게 아닌가.

 

정말 산타는 멋진맛을 마음깊이 음미하면서 둘이 뭐가 그리도 좋다고 히히덕 거리며

봉우리를 하나씩 넘어가는데 이런....

 

예상은 했지만 중간정도 지점인 문수봉을 앞두고는 눈보라가 사정없이 세차게

후려치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그래도 용감하게 앞으로 전진 또 전진.

대동문을지나 백운대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세상에나......

 

노적봉을 지난 지점부터 약 500 여미터 구간을 가파른 바위길에 그저 쇠말뚝을

박고는 거기에 굵을 쇠줄을 이어놓은것이 등산로 안전장치 전부였다.

 

눈보라는 세차게 후려치는데 그 굵은 쇠줄에쌓인 눈을 밀어내며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조심 밟으며 전진하는데 초행이니 얼마나 더가야 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누구하나 다른 사람도 안보이고 장갑낀 손은 젖을대로 젖었고(다행히 시리지는

않았다.) 바위는 미끄러워 조심에 조심을 한다지만 자칫 미끄러지면 바로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험이 다분한곳인데 그렇다고 어디로 돌아가거나 산행을 

포기할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아내나 내가 겁을내어 전진을 멈춘다면 이건 곧바로 사고로 이어

질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

그런 절박 할수도있는 그런 상황인데도 우리 숙.

 

전혀 위축됨이없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쇠줄을 단단히 움켜쥐고 당당하게 그

가파르고 미끄러운 등산로를 거리낌없이 전진하는게 아닌가.

 

혹시 걱정되어 괜찮으냐 묻는 내 질문에는

"까짓거, 이런 재미로 오자고한거 아녀? 호호호."

그러면서 혹시라도 내가 걱정이라도할까 염려되는지 오히려 나의 용기를

북돋워주느라 애를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

그랬구나 숙.

아무리 어렵고 힘든일이 있었어도 그렇게 이겨내 주었구나.

그리고 잘나지못한 이 남편이 위축되어 힘들어 할까봐 당신은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않고 오늘날까지 내곁을 지켜주고 있었구나.

 

당신의 그런 희생으로 그 가난을 이겨내어 큰 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날 이정도까지 이룰수 있었구나.

허허.

그저 고맙고 또 고맙네.

 

듬직한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를 새롭게 발견하듯 바라보는 날이었고 그 고마움을

속으로  뇌이며 그 힘든 산행을 무사히 마침을 또 감사하는 하루였다.

 

물론 그 눈보라속에서 문수봉과 백운대의 등정은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 해야했다.

 

출처 : 인천백작님의 플래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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