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갱년기.
누군가,
아니지.
거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었다.
아내나이가 6살 연하라니까 영계 데리고 산다고.
그래서 부럽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글도 썻었다.
<영계? 좋아 하지말어, 내 짝난다.> 라고.
그러니까 나이차 6살 가지고도 세대차이를 느끼게되어 어떤땐 참 답답하다고
행복에찬 푸념을 늘어놓은 글이었다.
그런데 그 영계라는 우리아내도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수 없다보니 어느덧 올해나이
50세의 문턱을 넘어서고 말았다.
50세짜리 영계?
뭐 그럴리야 없겠지만 눈에 돌이킬수없는 골절상입은 내게는 그저 아직도 귀엽고 이쁜
영계에서 다름아니니 이놈의 콩깍지는 죽을때 까지도 벗기엔 애시당초 글러 버린것같다.
그런데 올들기전 작년 11월부터 아내의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다.
공연히 화를내고 짜증을 부리는 횟수가 느는가 싶더니 작년 12월달에 장모님 생신날에
위로 큰언니(몇번을 말했지만 우리와 동갑인 맏처형)와 조금 티격거린걸 가지고는 1월이
다가도록 계속 투덜거리며 가슴에 상처로 남는지 영 잊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상하다?
"여지껏 살면서 티격태격 한일이 어디 한두번인가?"
"그런데 어째서 저리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거지?"
여태껏 보지 못한모습의 평소와 다른 아내를 바라보며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1월말 어느날에 아내가 슬며시 얘기하기를,
" 나, 우울해."
아, 이런!
그러고보니 아내의 갱년기 우울증이 시작되는 것이구나 하는것이 그때서야 느껴졌다.
어허라 이런 무심한 남편 같으니라구.
좀더 세심히 아내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작년 11월부터 어딘가 달라보이는 아내의
변화를 알았을테고 적절한 조치도 취할수 있었을텐데 그동안 아내는 말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그저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고보니 언니와 있었던 그런 작은 다툼조차도 마음속에서 몰아내지 못하고 그리도
투덜거리며 괴로워 했건마는 그런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참내.
물론 갱년기의 우울증이야 꼭 어떤일이 있어야만 우울한게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며칠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다.
정말로 우리 아내의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말로 언니와의 다툼만이 그 원인인지를.
생각끝에 나름대로 결론을내고 몇몇 여친들에게 경험을 물어보고는 저녁에 아내와 마주앉았다.
"이보게 숙."
"지금부터 내가 하는말중에 그것이 아니라 생각되는게 있더라도 부정하지말고 우선 들어주게."
그러면서 그전부터 아내의 특징 같은것을 주욱 설명하며 나열해봤다.
첫째는 그전부터 우리아내는 이왕 벌어져 다른사람에게 바가지를 긁어봐야 해결될것 없지만
생활속에서는 많은 어려움이있는,
즉 나의 실직으로 벌이가 없을때도 내게 얼른 취직하라든가 당신이 못버니 큰일이라든가 하면서
바가지를 긁어댄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저 우리 남편이 저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곧 취업하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기만 할뿐.
그렇지만 그동안에 마음속 고생이야 오죽했을려고.
그런 괴로움을 혼자서 속으로 삭이며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얼마전부터 생활속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것을 혼자서 마음속에 괴로움을
짊어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까.
우선 조금있으면 남편의 직장이 없어져서 실업자가 되는데 나름대로 계획이야 세웠다 하지만
앞날에대한 불안감이야 어찌 없었을려고.
아무래도 하나있는 아들이 곁이 아닌 군대에 있으니 그저 이놈도 보고싶고 그나마 무사히
잘 있기만을 빌겠지만 아마도 군대에서 일어난 어떤 사고소식이 뉴스에 나올때마다 가슴이
덜커덩 내려 앉았겠지.
"걱정마, 이 엄마가 다 길러줄께."
아이들에게 큰소리는 쳐놨지만 하루하루 불러가는 딸의 배를 볼때마다 정말로 손주를 기를때
걱정같은게 없을리가 없잔은가.
까마귀날자 배 떨어진다고 그런 걱정에 갱년기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어떤것을 걱정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는 사람에게 언니가 눈치(?)없이 사실이 아닌것을 가지고 냅다 윽박질러
버리니 그게 마음속에 코옥 박혀 가지고는 그것때문에 자신이 우울한줄 알고있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길게 설명할때 아무 대꾸도없이 끝까지 다 듣고난 우리 숙.
표정이 밝아지는 사람에게 한마디 매듭을 짓는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떤 일이든지 마음속에 담지말고 다 풀어내라구."
"그래도 당신은 참 행운아 아닌가."
"곁에 든든한 남편있지, 이쁜 딸있지."
"내가 언제든 당신의 기둥이 되어 줄테니까 걱정말고 다 털어내란 말이야. 알았지?"
"그리고 언니에게 섭섭했던 감정은 사실 그게 아니니까 이제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구."
아,
그래도 참 고민이다.
남편인 내가 어떤걸 어떻게 해주어야 우리 아내가 갱년기 우울증에서 빨리 벗어날지.
앞으로 차분히 생각해가며 이끌어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젠장.
이러다 이거 갱년기 우울증에 같이 걸리는거 아닌가?
그게 더 걱정이다. ㅎㅎㅎ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이런문제를 우리 여친들에게 질문하면 잘좀 인도해주기를 부탁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