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1부)
군에서 9월달에 제대하고 그 다음해 8월달.
한참 젊음이 용솟음치는 이때에 겁이란건 애초부터 마음속에서 추방한지 오래된 악동들.
이제 마지막 한학기남은 대학생활을 무언가 뇌리에남을 좋은 추억거리 하나 만들자며
세놈이 의기투합해 가지고는 무전여행 비스무리하게 떠나보자 의견을 모은후에 각자가
깊이 꼬불쳐 두었던 꼬깃꼬깃한 돈들을 최대한 거두어 비용이랍시고 만들어 가지고는
간단히 행장을 수습하여 정말 겁없이 여행을 떠났었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잘지, 얼마나 먹을건지 따위는 아예 생각지도않은 그야말로
무모하다 생각될만큼 젊음이 아니면 할수도없는 대단히 철딱서니없는 출발이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느집에 밭일하면 도와주고 새참 얻어먹고 어느집에 땔감 나르면
남는게 힘뿐이니 이럴때 안써먹으면 그나마 처치곤란(?) 할것이니 그거좀 도와주고 막걸리
한대포 얻어마시고 등등....
그렇게 이틀을 싸돌아 다니다가 충북의 어느 시골마을에 들어섰는데 조용한 마을이 그
시끄럽고 공해 먼지속에서 허우적대며 인천에서 생활하던 우리 악동들에겐 바로 천국
그 이상이었다.
적막이 흐를만큼 조용한 동네에서 들리는 샛소리는 아름다운 처녀의 노랫소리요,
거기에 잔잔히부는 시원한 바람과 그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들려주는 음악소리는 그대로
자연의 오케스트라 그것이었다.
그 풍경에 푸욱빠져 시간가는줄 모르던 이 악동들.
풍경 감상은 감상이요 일단 들이닥친 민생고는 해결하고 봐얄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빠듯한 예산으로 떠나온 여행경비는 얄팍한 주머니속에서 무조건 절약, 절약을
외치고 있으니 그것도 애초에 각오는 했다마는 현실은 과히 녹녹치 않구나.
고픈배 움켜쥐고 기껏 한다는게 동네 가게앞에서 컵라면 한개씩으로 일단은 아우성치는
뱃속의 기생충들을 달래야했다.
그래도 그것좀 먹었다고 한가지 해결했으니 여유가 생기기에 고개를 둘러보니 아,
저쪽에 펼쳐진 저 아름다운 계곡은 또 어디인고?
한여름에 시원한 계곡물이 흐를것같은 그 계곡으로 그곳이 어디인지 지명이 무엇인지
알아보지도않고 이 세 악동은 계곡을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발 두발.
계곡을따라 올라가며 콸콸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과 이쁜 산새들이 우리를 반기는듯한
착각을 즐기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오르다보니 이런....
아무런 준비도 안한 상태에서 조금있으면 어둠이 내릴 시간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그제서야 큰일났다싶어 사방을 둘러보니 조금더 윗쪽에 자그마한 집한채가 보인다.
멀리서나마 그 집 주변을 둘러보니 그래도 사람이 사는집같아 보였고 그래도 사람이
산다면 그집에서 하룻밤 이슬이나 피해보자고 의견을 모으고는 그집에 다다랐다.
누구라도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는데 깜짝 놀란듯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약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한분.
우리또한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이름도 모르는 산속에서 사람을 만난다는게
이렇게 반가울수도 있는거구나 새삼 느끼며 그 할머니가 최대한 놀라시지 않도록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우리의 처지를 설명한후에 하룻밤 신세를 질것을 정중히 청하였다.
우리의 상황설명이 끝나기도 전.
오히려 우리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그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우리를 반기면서 마치
먼곳의 자손이 오랫만에 찾아온듯 우리들손을 덥석잡고는 손등을 비벼가며 주름진
얼굴에 함박 웃음을 한껏 지으면서 그렇게도 좋아하시는 것이었다.
"아이고, 잘 왔어요, 잘왔어. 어서들와요, 아유 반가워라."
그런데 그 반가이 맞으시는 그분의 행위는 단지 사람의 왕래가 뜸한 외진 이곳을 사람이
찾아와 주었다는 그런 반가움과는 조금은 무언가다른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는 그런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저히 모르겠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저 찬이슬 피할수있는 집이 있다는데야.
이미 어둑 해지기 시작한 마당에서 우리를 마루로 안내한 그 할머니.
"시장들 하시죠?"
하시는데 말해야 뭣합니까?
그저 먹은거라곤 동네 가게에서 컵라면한개 먹은게 전부다요 그것은 이미 젊은 뱃속에서
어디론가 가버린지 한참 지났구마는.
부엌으로 들어가신 그 할머니.
달그락 거리며 무언가 차리시는것 같은데 이런 시골에서 차리는 밥상 치고는 좀 시간이
걸리네?
아무렴 얻어먹는 주제에 독촉할수도 없는노릇.
기다리고 있다보니 부엌에서 할머니가 부르신다.
상좀 내어가라고.
부엌으로 들어간 우리들 눈은 그만 화등잔만하게 확대되고 말았다.
들고나온 큼지막한 상위에는 이게 웬 진수성찬이란 말인가.
이런 산골에서 말이다.
통 돼지고기 삶은것 썰어놓았지,
통 쇠고기 편육에 통닭에 얼씨구?
동태 전도 있고 조기 구이에 .....
그것 뿐인가?
때글 때글하고 싱싱한 과일까지.
그리고 오호라~~!
이건 또 뭔고?
큼지막한 주전자 속에서 사~알살 향기를 풍기는 이 누리팅팅한 액체는 분명히 술.
그것도 이런곳 아니면 맛볼수없는 동동주렸다?
히히히....
우리들이 올걸 아시고 미리 준비하셨나?
그럴리가....
암튼 길게 생각할 여유가 어딨누?
당장 들여보내라 아우성치는 놈들이 바로 아래에 버티고 있구만.
"잘 먹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블랙홀이 별을 빨아들여도 이렇게 하려나?
상위를 무섭게 질주하는 손길따라 그 음식들은 볼따구가 미어 터지던말든 개의치
않는다는듯이 우리의 입으로 무질서하게 들이 닥치고 있었다.
언제 씹었니?
묻거나 확인할새도 없었다.
입에서 살살 녹든지 말든지 그저 우겨넣는 그 음식의맛은 지금도 평생 잊지못할만큼
우리들 입맛을 점령해 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있는 우리들을 그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면서
물 떠다주네 이음식 저음식 더먹으라 밀어주네 하면서 우리들 시중을 들어주시는데 왜일까?
그 미소 속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그 어떤 다른 분위기는.
아귀같이 먹어대던 손길이 뜸해질때쯤 우리들 허리는 이미 한아름 안을만큼 굵어져 있었고
그제야 한숨돌린 우리들과 할머니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할머니는 그즈음에 보기드물게 신식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10여년전에 할아버지와 이곳에 들어와 노년을 보내시는 중이고 어쩌고 ....까지는 좋았는데.
가뜩이나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데다 줄기차게 먹어댄 음식으로인한 식곤증은 우리를 그곳에
오래 앉혀두질 않았다.
피곤해하는 우리들에게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고는 할머니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자다가 잠깐 잠깐 떠지는 눈에는 안방의 호롱불이 밤늦게까지 켜져있었다.
암튼 그날저녁 음식에취해 술에취해 미주알 고주알 나누었던 얘기중에 그 할머니의
잘 부탁한다는 말이 생각나고 그 부탁은 내일아침에 하게될거란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하며 이미 밝아진 마루에서 할머니가 덮어주신 담요를 제끼며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아직 잠에 골아떨어진 두녀석을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대체 알수없는 이 음산한
분위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고보니 계곡의 물소리는 변함없는데 그 많던 새들의 노랫소리는 왜이리 조용하지?
옅은 안개가 조용히 드리운 울타리 밖 계곡의 분위기는 그렇다하고 기척도 보이지않는
할머니는 이 이른아침에 우리를 놔두고 어디 가신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