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아내에게 큰 절을 바치는 사나이.

인천백작 2010. 5. 3. 16:19

어디선가 읽은적이 있는것같다.

남존여비 사상이 투철한 우리나라 전통상 아내가 남편에게 큰절을 하는경우는

있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큰절을 하는경우는 결혼식때와 아내가 먼저죽어 제삿상

앞에서 만이라고.

 

그런데 한 사나이는 그 아내에게 큰절을 했으니........

 

그 사나이가 군에서 제대후 취업한 회사에서 만나게된 이쁜 천사같은여인.

학교를 갓 졸업하고 들어온 신입 여사원에게 같지도않은 농담을 지껄이며

접근을 시도했고 그게또 먹혀들어가고 어쩌고 하더니 드디어 결혼이란걸

하게 되었댄다.

 

자,

그런데.

그 사나이가 가진거라곤 평소에 그의 아버님이 버릇처럼  하시던 말씀대로

재산이라곤 땡전한푼 물려줄것은 없다만 공부못했단 소리는 듣지않게 해주마

하신대로 정말 재산이라곤 그저 전세방 하나얻을 돈밖엔 가진것이 없었더랜다.

 

말 그대로 숟갈 두개,

젓가락 두짝,

냄비하나로 시작한 신혼생활.

그래도 그렇게 행복했대나 어쨌대나.

 

아이도낳고 알콩콩 달콩콩 사는것까지야 그렇다 하더라도 어린애들 데리고

셋방살이 하기가 얼마나 고달픈지는 경험자들이야 다들 알겠고 그러니 그시절에

소원이 있다면 그저 내이름으로 등기된 내집한칸 있었으면..... 하는거였댄다.

 

그러니 물려받은 재산없이 내집 마련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도 직장생활 하면서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말이다.

 

그래도 그 아내의 어느면에 그런 악착이 들어있었던지 정말 그 박봉의 봉급을 아끼고

아껴서는 결혼 15년만에 우선 주공 임대아파트에 입주할수있는 자금을 모았댄다.

작지않은 평수인데 분양이 안되니까 우선 임대를 한거랜다.

정말로 지독하다면 지독하게 모아서는 말이다.

임대 5년후에 분양하는 조건으로.

 

이제 집주인 눈치볼일 없으니 그것만 가지고도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대지?

 

그 사나이는 속으로 결심하고 또 결심했더랜다.

이 아파트를 분양받는날,

여태껏 가족을위해 고생만해온 그의 아내에게 이집을 선물한다 생각하고 아내이름으로

등기를 하겠노라고.

 

다시금 짜고 또 짜는 구두쇠 생활속에 힘은 들었지만 5년후에 이집의 주인이된다는

희망하나로 그 괴로움을 이겨나가던중 드디어 5년이 흐른후 그집을 분양받을만큼

자금을 만들수 있었더랜다.

 

사나이는 결심대로 아내명의로 등기하겠노라 말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필요 없다고

사양하는 아내를 데리고 등기하려고하니 이미 임대를 사나이 이름으로 했기때문에

명의를 바꾸면 상속이 되는관계로 많은돈이 들어간다는 말을듣고는 그냥 사내이름으로

등기를 마쳤댄다.

 

자,

드디어 그렇게 꿈에그리고 그리던 내집이 마련되어진것 아닌가 말이다.

그 기쁨을 무엇에 비길것이며 이렇게 이루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온 그 사나이.

아내를 조용히 불렀고 의아해하는 아내를 거실 소파에 단정히 앉히고는 그 무릎앞에

등기장을 놓았댄다.

 

그리고는 그 아내앞에 무릎을 꿇고는 진심어린 감사와함께 큰절을.........

순간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하는 아내를 보면서 왜인지모를 굵은 눈물이 뺨을타고

흐르더랜다.

 

그것을본 그의 아내는 순간 벌떡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냅다 뛰어가서는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있었고 조용히 다가간 그 사내는 가녀린 아내의 허리를 뒤에서

감싸안으며 아무말없이 아내의 뒷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었댄다.

거기에서 또다른 무슨말이 필요했겠는가.

 

이제,

아이들도 모두 장성해 대학공부도 마쳤고 그 부부는  나이가 들을만큼 들은 지금에도

변치않는 신혼같이 서로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며 산댄다.

 

앞으로도 계속 변치않고 그렇게 살아 갈거래더라.

 

또,

그렇게 살아갈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댄다.

 

출처 : 인천백작님의 플래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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