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언제든,어디서든, 무슨일이든.(나의 생활신조중 하나)

인천백작 2007. 9. 13. 22:40

언제든,어디서든, 무슨일이든 최선을 다하자.

이것은 나의 생활방식중 하나이면서 군에가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다.

그러면 그 후배는 멀뚱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경우가많다.

 

"다른 선배님들은요 너무 잘해도 고롭고(괴롭고의 군대말) 너무 못해도 고로우니

 어영부영(대~충) 중간만 가다가 제대 하라는데요?"

 

그러면 나는 그 군에서 매사에 최선을 다했기에 사고를 치고도 같이 사고친

동료들은 군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나는 용서받을수 있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1977년 12월16일 논산훈련소에,

아버님께는 3년간 여행을 다녀 오겠다고 큰절을하고 입대한곳.

 

그추운 겨울에 훈련을 받는데 그 힘들고 괴로운 훈련이 내게는 미리 준비된것처럼

받아들여 질것이 많이 있었다.

 

태권도시간은 이미 4년간 태권도를 수련하다가 입대했으니 조교보다

내가 선생이요.

 

총검술의 자세는 태권도 자세이니 기본만알면 내겐 휴식시간이었다.

뭐가 그리도 외울게 많은지 그자세로 사회에서 공부했다면 사법고시는 정말

따놓은 당상이란게 맞을것이고 3일마다 주관식으로 치르는 시험엔

총 180여명중에서 2~3 명만 나오는 만점에 한번도 떨어져 본적이 없었다.

 

소총사격은 길쭉한 이몸에 아주 딱맞는 자세가 나오는데 거기에 시력도

좋으니 (양눈 2.0) 쏘는대로 백발백중이라.

훈련소 퇴소식을 앞두고 내무반장이 살며시 부르더니 하는말.

 

"최고점수자에게 수여되는 훈련소장상을 네가받아야 되는데 지금 이내무반에

  대표로 고생한 저친구에게 양보할수 있겠냐."

"네가 양보를 않는다면 네게 주겠다."

 

나는 그저 이곳에서 최고점수라는것만 알면 됐으니 저사람에게 주라고 흔쾌히

양보하고 자대로 떠났다.

 

자대에 배치받자마자 내게는 다른사람과는 좀다른  바쁜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총사격 사단대표선수.

태권도 조교.

주민계몽강사.

일반 육군이면서도 비상시 중대대표 사복근무.

단기사병(방위병) 군가지도 조교.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여 포상은 많이 받았으나 그놈의 휴가복은 지지리도 없어

포상휴가는 증서만 받아놓고 한번도 못나왔다.

뭔놈의 비상이 그리도 자주 걸리는지....

별 소득도 없이 이런일 하느라 총 복무기간의 반을 부대밖에서 보내다 제대했는데...

 

내가  복무하던 부대가  해안선을 지키는 경계부대였고 그래서 우리는 귀가 따갑게

들어야하는 말이 있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왈

"전쟁에 진 지휘관은 용서받을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못받을수 없다."

 

그런데 어느 한해도 저무는 연말에 마을청년들이 막걸리를 가지고 우리 초소에

위문차 왔었고, 선의의 그들행위가 오히려 우리에겐 비극의 시작이었다.

 

경계근무는 나가야 하는데 모두 술에 떡이 되었으니 나갈 생각을 않하네그려.

 

그래도 내가 몇명을 추스려 초소로 경계근무를 나갔지만 나자신도 몇달만에

마신술로인해 그만 초소안에서 골아떨어져 잠들고 말았고 그것이 순찰중이던

대대장에게 곧바로 적발되고 말았다.

 

경험이 없던 이 대대장은 곧바로 연대에 보고했고 연대에서는 그대로 모두

사단영창에 구속수감하라 명령이 떨어지니 그때에야 문제가 커짐을 느낀

이 대대장.

급히 고참들3명만 구속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사건을 축소했다.(난 14개월째 쫄병)

 

고참들(거의 3년된 사람들)이 구속수감되고 그 와중에 어찌하다보니 나는

사단소총 사격대회에 연대대표4명중 한명으로 참석하였고 처음으로 점수판에

M-16소총으로 사격하는 사격대회에서 총 300점 만점에 278점(잊지도 않는다.).

평균 92.7%의 성적으로 개인우승및 우리연대 단체우승까지 거머쥐고 중대로

복귀하는데.....

 

이 구속된 고참들이 자신들만 그리된것이 억울하다고 나머지 모두를 걸고넘어갔고

기어이 나머지 8명이 사단 헌병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나머지 7명도 구속.

마지막으로 나에게 검찰관(소령)이심문을 하기시작했다.

 

"야. 너 사회에서 전과있지?"

"없읍니다."

"야 임마, 전과있잖아."

"(언성을 높여서, 뭐뀐놈이 뭐한다고) 전과있으면 어떻게 군대옵니까?"

"어, 그래그래. 전과없고....."

 

"뭐 사회에서 상받은거 없지?"

"있읍니다."

"야 뭐 시시한 우등상 같은거 말고 뭐 장관상이나 대통령상 같은거 받았니?"

"그런건 없지만 이번에 사단장님 표창을 받았읍니다."

:뭐? 네까짓게 뭐했다고 사단장님 표창을 받아?"

"이번 사단 사격대회에서 우승해서 받았읍니다."

일반 사병이, 그것도 뚝떨어진 예하부대 사병이 사단장 표창받기가  쉽지않던

시절이었으니 검찰관이 놀라는것도 당연했다.

 

검찰관의 눈빛이 달라짐을 느꼈고 나는 불구속으로 재판날자까지 그냥 내무반에

대기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것도 우리부대에서 공개재판을 하는데 이 검찰관.

내 동료들에게 무조건 1년형을 구형하네그려.(나중에 그대로 선고되더라.)

맨마지막에 내차례.

 

"이사람은 여기에 이사람들과 함께 같은죄를 지은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사람은 이번에 사단사격대회에서 개인우승을 한 사람입니다."

"군인이 사격을 잘한다는것은 평소에 군인으로서 충실히 의무를 다한사람이라

 생각되므로 이번일로 중형에 처해야 마땅하나 한번의 실수라 인정하여

 이사람에대한 공소를 기각합니다."

 

그퉁퉁한 검찰관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수가 없고 고개를 끄덕이는 판사가

진짜 멋있게 보였으며 하늘은 노오랗게 떠있더라.

 

그렇다,

정말 선배들 말대로 어영부영 중간만 하다가 이런경우를 당했다면 저기에

저 사람들처럼 나도 똑같이 전과자가 됐을것 아닌가.

항상 최선을 다한생활.

그랬기에 이런 용서도 받은것 아닌가.

 

그래서 그전이나 그 이후나 나에겐 이말이 그대로 생활이 되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무슨일이든 최선을 다하자.

남이 내게하는 평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내 스스로의 평가에 더 인색하자.

어느 누구에게든 꼭 필요한 사람이되자. 단 범죄는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