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도둑.
우리 여친 들이야 그 자신들이 도둑이니 도둑질(?)도 많이 했을테고
그 담엔 새로 만들어 내놓은 도둑에게 열심히 뜯기면서도 그저 실실 흘러 나오는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을것이야 보지 않아도 뻔한것.
그래도 그 도둑이 전혀 밉지않은건 물론이요 오히려 더 많이 훔쳐(?)가라고
돌아 서는 녀석까지 되돌려 놓고는 또 그손에다 바리바리 들려 보낼테니
도둑질 한번 참 쉽게도한다.
이번 추석때는 얼마나 많은 도둑들이 이쁘게 도둑질을 엄청나게 해치웠을까?
뭐 궁금 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결혼후에,
우리 처가는 몇번 말했지만 충남 아산시 도고면이요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집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농촌에는 정말 인력부족이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수만은 없는것 아닌가.
부족한 손을 일부라도 덜어낸다고 우리도 나선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던 시절에 아내는 친정으로 가고 난 처가에 가면서 아이들은 외가집에 보낸다.
뭐?
뿔뿔히 흩어졌다고?
에이.
잘 생각해 보시구랴.
암튼 그렇게 모여서 농사일을 거든답시고 가긴 가지만 아내야 어릴때부터 손에,몸에 익은 일이니
잘 해내지만 나야 어디 농사 일이란걸 해보기나 했어야 말이지.
논에 모낸다고 모를 찧어 가져오라면 지게에 지고 일어나다 지게밑에 깔리질않나.
풀 좀 베어와라 하면 낫을 쥐고는 풀 한 포기잡고 싹뚝 한번,
또 한포기잡고 싹뚝 한번이니 이러다 풀 베기보다 손가락베기 딱 참하니 불안해지신 장인어른 말씀 왈.
"김서방은 저기 저수지에가서 매운탕 거리나 잡아오게."
그럼 다른 이들은 일 하거나 말거나 난 낚시대챙겨 저수지로 줄행랑을친다.
그래놓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느라 인사를 하다보면 그때부터 또 다른 난리가 벌어진다.
장모님이 무언가 한보따리 내놓고 가져 가라시는데 그 다음에 우리 아내의 행동이 참 가관이다.
물론 그때 생각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엄마."
소리 한번 할때마다 배추가 나오고 무우가 바리바리 나오더니 고추 가루봉지에 이어서 마늘이 바글바글....
그런데도 우리 장모님은 연신 실실 웃으시면서 열심히도 내오시는데 그걸보는 나는 정말 죄송 스러워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아니,
그렇게 힘들여 농사 지으신 것들을 딸이 달란다고 아낌없이 퍽퍽 내주시다니.
그렇다고 용돈이라도 푸짐하게 드릴수있는 그런 우리 살림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에는 어째 딸이 달란다고 저렇게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시고 마구(?) 내주시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하기가 곤란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니 시레기가 큰 봉지에 담겨있는걸 보고는 갑자기 구수한 된장국이
먹고 싶어졌다.
아내에게 내일 아침에 먹게시리 국좀 끓이라니까 귀찮게 한다면서도 국을 한 솥단지 끓여놓는다.
근데 덩치도 자그마한 사람이 손만 커 가지고는 국이나 탕은 조금 끓이면 맛이 없대나 어쨌대나.
혼자 먹으면 하루 세끼씩 꼬박 먹어도 한 나흘을 족히 먹을만큼 많이도 끓여놓는다.
덥혀 먹다 덥혀 먹다 나중에는 조금 남은것을 먹기도 물려서 버릴때가 종종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 아침에 아내는 볼일보러 나간다음 10시경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딸에게서 전화가온다.
"아빠, 아침에 엄마 무슨국 끓여놨어요?"
맛있는 된장국 얘기를했고 당연히 가지러 온다고 하는데 왜 그소리가 반갑게 들리는거지?
딸이 와서 국 솥에서 국을 거의 2/3를 덜어가는데 더 담으라 하질않나.
그제 이모가 담근 총각 김치가 아주 맛있게 익었더라면서 내자신이 김치 냉장고에서 덜썩 내오는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주 김치통을 내주며 덜어가라 했더만 이녀석이 염치라곤 제집에 두고왔는지
김치통의 반을 덜어낸다.
그런데 그런 딸을 보면서 내마음은 왜 이리도 흐뭇한거지?
아까운 마음은 둘째치고 이녀석이 왜 좀더 가져가지 저것만 가져가나 오히려 그게더 아쉬우니 원.
그리고,
그순간 생각나는 옛일 하나.
왜 장모님이 내 아내가 달라는대로 그리 웃으시며 주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거다.
그래,
이런 마음 이었구나.
내 물건을,
내 재산의 일부를 저리도 마구 가져가는 저 도둑이 이렇게 이쁠수가 있다니.
그래서 그런 말이 있구나.
딸은 밉지않은 도둑놈 이라고,
통이 두개이니 혼자서는 못 가져 갈테니 한통을 들고서 딸네 집을 가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내 딸아."
"이렇게 이 애비가 줄수 있을때 많이 많이 훔쳐가렴."
"준다는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임을 알게 해주어 고맙다."
"밉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이쁜 내 도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