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기상 해설가.
가끔은 애들의 엉뚱한 질문에 당혹스러워 얼렁뚱땅 얼버 무리거나 나름대로 잘 답한다고
하긴 했지만 뭔가 찜찜함이 남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해봤으리라.
내게도 물론 그런일이 있었기에 그 경험을 여기에 남겨본다.
6월말 쯤이었나?
큰 외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 줘야겠는데 제법 많은비가 바람과 함께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을까 염려되어 손녀를 안고는 우산을 쓰고 가는데 얼마쯤 가다가 그 자그마한
머리에서도 궁금하긴 했었나보다.
"할아버지 비오네."
"근데 할아버지."
"바람은 왜불어?"
순간 머리속이 무지하게 바삐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걸 어떻게 답해줘야 현명한 대답이 된단말인가.
그러면서 다른 한편 생각에는 이건뭐 모전여전인가,
아니면 그때쯤의 계집애들은 이런 질문을 한번씩 하는것이 통과 의례라도 된단 말인지.
바로 이녀석 에미.
그러니까 내 딸이 이녀석 요맘때쯤 됐던 시절,
버스를타고 볼일을보러 가면서 딸을 데리고 가고있었다.
때는 12월 초겨울 이었는데 가다보니 차창밖으로 함박눈이 펄펄 날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무릎에 앉힌 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연선아."
"응?"
"눈온다."
"응 그러네."
얼마쯤 가다가 딸이 뜬금없이 묻는다.
"근데 아빠?"
"눈은 왜 와?"
맙소사....
이걸 뭐라 대답해야 한단말인가.
잠시 고민에 깊숙히 푸욱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
융통성이나 요령, 거기에 눈치라곤 절에가서 새우젓커녕 새우 꽁댕이조차 구경못할
그런 앞뒤로 꼭 막힌 답답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답했을지는 너무도 뻔한거 아닌가.
"으응, 그건...."
으로 시작해서 공기가 어떻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땅에 닿을때쯤 추운 대기로인해
얼어서 내리면 그게 눈이되고 어쩌고......
이게 네살짜리 딸에게 설명해줄 그런 수준의 답인가 말이다.
"알았지?"
하는 내 말에 알았다고 답하는 딸을보며 한없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야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열흘후에 풀수있었는데 토요일마다 T.V에서 외국영화를
방송하였고 그 영화중에 [가위손]이란 영화를 보게되었다.
첫 장면은 거실에서 이제 댓살정도된 어린 소녀와 80세정도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 거실 창문 밖으로 함박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그때 손녀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눈은 왜 와?"
바로 얼마전에 딸의 같은 질문에 곤혹 스러웠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뜨고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할머니 대답에 나도몰래 무릎을 탁 치고말았다.
"으응, 그건. 가위손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그윽한 표정으로 아주 먼 옛날의 추억속으로 빠져든다.
그 할머니가 16세 소녀시절.
그 소녀가 살던 동네에서 좀 떨어진 언덕위 저택에는 늙은 박사 한사람이 살고있었다.
그 박사는 혼자사는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였던가?
20대 정도의 청년 모습으로 로보트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하긴 우리 어린 시절에 박사라면 뭐든지 척척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인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로보트를 완성해 가는즈음에 이 박사는 자신의 명이 다해감을 느끼게 되었고 아직
미완성인 이 로보트에게 미처 양손을 다 만들어주지 못하고 운명하게 되었음을 알고는 우선
다급한대로 손 대신 가위를 만들어 양 손목에 붙여주고는 숨을 거둔다.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가동을 시작한 이 로봇.
이 세상 일에대한 경험이라고는 일체없는 그저 순수하기 그지없는 착한 어린애같은 그 로봇은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속에 섞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로봇은 사람들에게 엉뚱하게 이용
당하기도하고 자신을 왕따 시키며 괴롭히는 마을 소년들로부터 도망쳐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지만 그곳까지 따라와 괴롭히는 소년들에게 방어 한답시고 휘두른 가위손으로 인하여
예기치못한 살인까지 저지르게된다.
그런 로봇을 불쌍히 여기며 돌봐주다보니 어느덧 사랑까지 하게된 이 소녀.
어느 겨울에 저택으로 그를 찾아 갔을때 그 로보트는 소녀를 진정으로 반기며
소녀를위해 기쁨에 찬 표정으로 가위손을 능숙하게 휘둘러 커다란 얼음을 깍아가며
그 소녀 모습의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가위손을 휘두를때마다 깍이어나간 얼음 알갱이들은 하얀 눈처럼 휘날리고 그 아래에서
소녀는 눈같은 얼음 알갱이를 맞으며 행복에 가득찬 몸짓으로 아름답게 춤을춘다.
그렇게 추억에 잠기며 할머니는 눈이 오는것은 가위손 때문이라고 손녀에게 말하는데
그것을 보는순간 나 자신도 아주 어려운 문제 하나를 푼것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근데 한세대 지나쳐 이 꼬맹이 외손녀 녀석.
할배에게 기껏 묻는게 비오는데 바람은 왜 부느냐고?
잠시 곤혹 스러웠지만 그래도 경험은 가장 좋은 스승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 이기도했다.
"으응, 그건."
"비가 혼자 오다보니 심심해서 바람도 데려와서 그렇단다."
말해 놓고 생각하니 참 그럴듯 하긴하네.
진작에 이런 말들좀 생각해둘껄, 흐흐흐....
"으응, 그렇구나."
외손녀 말을 들으며 혼자 으뭇함에 젖었는데 그 다음 날.
비는 멎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불어댄다.
유치원에 데려다 주느라 안고가는데 이녀석이 또 묻는게 아닌가."
"할아버지, 비는 안오는데 바람을 왜불어?"
아이 짜슥이,
별게 다 궁금해 ㅆ.
그런데 물어오니 대답은 해줘야할것 아닌가.
얼른 떠오르는 엉뚱한 답 하나.
"응 그건."
"비가 바람하고 같이 갈려고 그랬는데."
"바람이 느리게 가다보니 비가 먼저 가버려서 바람이 비를 따라 가느라고 부는거래."
또 답해놓고보니 그럴싸 하네그려.
혼자 흡족해져서 헤벌쭉 벌린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하여간에 손녀야.
저기압이 어쩌고 고기압과 기압골이 뭐가 어떻게 되고 등등은 네가 좀더 크거든 그때
제대로 배우려무나.
나중에 이 할배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알게 되더라도 한번 픽 웃고 지나가주고.
물론 기억 할리도 없겠지만.
암튼,
오늘의 엉터리 기상 해설,
이 할배의 기상 해설은 여기서
끄~~~~읕!